초등영어교육의 고려사항

영어 듣기 교육에 대하여

돌김짱 2007. 4. 15. 19:41

  초등학생 영어지도를 위해서 상담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회화에 관한 것인데 우리는 영어회화는 안 가르친다고 설명을 하면 일단 납득을 했다가도 또 묻는 말이 있다. 듣기 훈련은 어떻게 하느냐, 혹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자녀의 영어 교육을 맡겼다가도 가끔 전화를 해서 물어본다. 듣기 훈련은 하지 않느냐고... 주변에서 듣기가 중요하다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듣기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불안스럽게 물어온다.


  영어에서 듣기 물론 중요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듣기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연습을 충분히 하면 좋은 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듣기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며 듣기 연습하느라 투자하는 시간과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면 훨씬 더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미 강조해서 말했지만 영어는 자신이 독해할 수 있는 말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영작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말을 할 수 있다. 천천히 눈으로 보면서도 해석을 할 수 없으면 순식간에 쏟아져 들어오는 말은 결코 해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도 영작이 안 되는 말이 입으로는 절로 술술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한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하는 말은 전부 한글로 쓸 수 있고 자기가 읽고 뜻을 알 수 있는 말은 들으며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자기가 글로 쓸 수 있는 것보다는 말로 하는 것이 더 어렵고 글을 읽으면서 이해하는 것보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해하는 게 더 어렵다. 누구든지 글보다는 말이 수준이 낮고 책으로 읽으면 듣는 것보다 더 쉽게 이해한다. 영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듣기를 잘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독해를 잘 해야 한다. 독해를 잘 하면 그 독해의 능력 범위 안에서 듣기가 향상된다. 그리고 독해를 못하는 아이를 아무리 듣기 연습을 시켜도 듣지 못한다. 물론 수도 없이 읽히고 외우게 해서 듣게 할 수는 있지만 그건 임시방편일 뿐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독해를 할 수 있는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발음이 나빠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을 알아들을 때 자신의 발음에 빗대어서 알아듣는다. 즉, 자신이 발음하는 대로 발음해 주는 말만 알아듣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투리가 심한 사람은 표준말을 잘 못 알아듣고 반대로 표준말만 하고 살아온 사람은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영어 발음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사람들이 한국사람 영어발음을 원어민 영어발음보다 더 잘 알아듣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듣기를 잘 하려면 일단 독해실력이 뛰어나야 하고(독해실력이 뛰어나다 함은 단어실력도 같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그 다음에는 발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원어민처럼 유창한 발음을 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올바른 발음법과 발음의 모양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한 발음법을 지도해 주는 좋은 영어교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발음을 배우기에 좋은 영어교사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원어민이 아니라 이중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가 원어민 같은 발음은 할 수 없지만 비교적 정확한 발음법을 알고 있고 그 발음법을 가르치며 계속해서 그 발음법대로 발음을 하도록 교정을 시킨 결과 아이들이 거의 모든 단어를 잘 알아듣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영어 발음을 교정하면서 수업을 진행한 결과 어느 정도 단어와 독해의 실력을 쌓은 후 수준에 맞는 듣기 연습을 시키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90% 이상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정답을 맞힐 수 있었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 3,4학년부터 시작해서 1-2년을 공부하고 나면 영어 단어 실력이 천 개를 넘어서게 되고, 천 여 개의 영작 연습, 그리고 십여 권의 독해를 위한 이야기책을 공부하게 되는데 이 정도면 중학교 2학년 수준 정도의 듣기는 무난하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중학교 1학년말쯤 되면 고등학교 2,3학년 수준의 듣기가 무난하게 된다. 즉, 수능 듣기 정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듣기 능력이 중 1이나 2학년초에 이미 형성된다는 것이다.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테이프를 자주 들려주면 영어에 대한 공포심도 물리치고 발음을 듣는 연습도 되어서 나중에 듣기에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전혀 영어 발음에 접근하지 못하고 책으로만 공부를 한 경우보다는 이야기책 테이프를 종종 들으면 확실히 조금은 효과가 있다.

 

  그러나 테이프 듣고 이야기책 읽고 소설 쓰듯이 해석하는 정도의 훈련으로는 한계가 분명히 있고 그 한계는 매우 좁다. 초등학교 때 그렇게 영어공부를 한 아이들이 중학교 들어가서 듣기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아주 좋은 예다.


  듣기를 위해서 또 해야할 일은 숙어를 열심히 외우는 것이다. 단어를 많이 알아도 숙어를 모르면 듣기에서 숙어에 해당하는 말이 나왔을 경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된다. 그냥 지나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다음 말들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이 듣는 것을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말을 따라가다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나오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생각하느라 다음 말을 듣지 않고 흘려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숙어가 하나 모르는 것이 나오면 단어는 알아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그 자리에서 그만 멈춰서 쉬운 다음 말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놓쳐서 알아듣지 못했던 말을 그 문장을 천천히 읽어주고 그 뜻을 해석해 준 다음에 다시 듣게 하면 분명히 알아듣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집에서 듣기 연습을 시킬 때에도 막무가내로 테이프만 틀어주고 들으라고 할 게 아니라 대사 하나 하나를 끊어서 알아들었는지 뜻을 물어서 확인하고 못 알아들었으면 대사를 말로 읽어준 다음 그 뜻을 해석해주고 그리고 다시 듣게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렇게 훈련을 시키면 알아듣는 것이 급속도로 향상된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의 경우에는 DVD가 매우 효과적이다. DVD는 자막을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고 영화의 흐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먼저 영화를 자막 없이 보게 하고 그 다음에 자막을 넣고 보게 한 후 다시 한글 자막을 보면서 내용을 이해하면서 이전의 영어 자막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스스로 생각하게 한 다음 되풀이해서 영어 자막과 함께 몇 차례 영화를 보게 하면 듣는 것이 급속도로 향상될 것이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영화 타이틀은 몇 번이고 봐도 질리지 않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인 듣기 학습법이 될 수 있다.

 

  부모로서 아이의 영어 듣기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가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가정에서 열심히 듣기 연습을 시키면 웬만한 학원 보내는 것보다 몇 곱절 효과적으로 듣기 교육을 시킬 수 있고 원하는 만큼의 듣기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어 듣기의 지름길은 단어와 숙어, 그리고 독해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테이프와 영화 DVD를 통한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테이프나 원어민 교사를 통한 듣기만의 훈련과 연습은 별로 커다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