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8일 오후예배 설교: 가라! 모세여!
제목: 가라, 모세여!
본문: 출애굽기 3:6-10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r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 3:6-10)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다시 만나 뵈니 정말 반갑습니다. 그 동안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평안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성탄절도 복되게 보내시고 새해도 행복하게 잘 맞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신정보다는 구정을 더 크게 쇠기 때문에 아무래도 신정은 설 같은 느낌이 덜하죠. 문화의 힘이 참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한 부분이지요.
오늘날 우리나라는 참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서 나라 일을 보기 보다는 얼굴 꾸미고 환각제 비슷한 약물 주사나 맞고 퇴임 후를 대비해서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등 재벌기업에게서 삥 뜯어 재단이나 만들고, 지인인 최순실에게 대통령 권한을 스스로 헌납한 후 그녀의 지시대로 국정을 농단한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참 우스운 꼴이 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을 비롯해서 일부 지배계층에게 노예로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은 줄어들기는커녕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도 기다리고 있는 직장은 비정규직이고, 그나마도 없어서 청년 백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노인들은 평생을 가족과 국가를 위해 나의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노후 대책이 막막한 상황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노인층 빈곤율이 2010년 기준 48.6%에 달하며 OECD 국가들 중에서 최악의 상황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다음인 일본이 20% 정도로서 우리나라가 압도적인 1위라 앞으로 이 자리를 내어줄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의 노예는 노예로 사는 대신 의식주 걱정은 안 했습니다. 주인이 다 해결해 주었거던요. 지금 우리는 가진 자들, 지배계층을 위해 노예처럼 일을 하지만 그러면서 의식주 걱정을 해야 하고 늙어서는 특히 하루하루 연명할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폐지 줍는 노인이 남의 일 같지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과거 노예들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기는 합니다만, 사회 구조적으로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나가고 전국 각지에서 촛불집회로 거리를 밝혔습니다. 비록 우리가 신분상 노예는 아니지만 이 노예와 같은 착취구조에서 벗어나야할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내라고 명령을 내린 사건을 가지고 우리의 현실에 적용해서 말씀을 생각해 볼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민족을 이루고 남의 압제에서 벗어난 그 첫 사건이 출애굽사건입니다. 수 백 년 애굽의 노예로 지내던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되어 한 민족을 이루고 사는 첫 사건으로 애굽으로부터의 탈출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탈출을 인도한 것은 모세였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키우시고 훈련시키시고 단련시키셔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도록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미디안 광야에서 사제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가시덤불 불 속에서 부르시고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킵니다. 그 해방의 과정도 복잡다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다시피 때로는 애굽의 고기가마가 그리워 모세를 원망하기도 하고, 광야에서 이방신을 섬기기도 하고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모세는 화를 내기도 하고 지혜를 발휘하기도 하면서 40여 년의 광야생활 끝에 기어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의 문턱까지 인도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나머지 임무를 완수합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은 모세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라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모세입니다. 목사님들만 모세가 아니라 기독교인은 모두가 한 명 한 명 여기계신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그리고 평신도 한 분 한 분이 똑 같이 귀중한 모세입니다. 세상을 구하고 압제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원한 모세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세라면 우리가 구원할, 인도해 내야 할 이스라엘 민족, 바로의 압제 하에서 신음하는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 자신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사람을 폭행하는 애굽사람을 죽였다가 바로의 표적이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쳐야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가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용감하게 바로에게 나아가서 내 백성을 해방시키라고 담대하게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모세야! 라고 명하셨을 때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바로에게 나아갑니다.
오늘날 우리는 도처에서 노예를 봅니다. 과거에 노예는 신체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신체의 자유는 확보했지만 그 대신 노예보다 더 심한 압제를 당하는 것을 도처에서 봅니다. 과거 노예는 주인이 의식주는 해결해주었습니다. 신체의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의식주로부터는 자유로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서민들과 하층민들이 신체의 자유는 있을망정 의식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오늘날 가진 자들은 온갖 못된 짓으로 하층민들, 서민들을 수탈하고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을 보십시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이 벌여온 일을 보십시오. 죽을 고생을 해서 공부한 학생들은 떨어뜨리고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입학시키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했고, 그 악행에는 이화여대 총장부터 학장, 평교수에 이르기까지 다 가담했습니다. 그런 못된 짓을 저지르고서도 국회 국감장에서 전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합니다. 나라의 예산을 떡주무르듯이 주물러서 자기들 잇속을 채우고, 대기업들에게 협박해서 수 백 억 원의 돈을 며칠 사이에 뜯어내어 사욕을 채웠습니다. 항간에는 최순실이 독일에 숨긴 돈만 8천 억 원에 이른다고 하고, 혹자는 10조에 이르는 재산을 축재했다고도 합니다.
서민들이 한 달에 200만 원을 벌기 위해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살고 있습니까! 힘겹게 택배 배달을 하는 젊은이가 하루 종일 무거운 짐 배달하고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이 200만 원도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최순실은 놀고 먹으면서 그 많은 돈을 축재했습니다. 어디서 나온 돈이겠습니까? 거의 100% 불법과 부정으로 착복한 것이지요. 그 돈은 누군가가 피땀흘려 벌은 돈입니다.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돈이겠지요. 대통령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청와대에서 얼굴 미용시술이나 하고, 프로포폴 맞으면서 환각 상태에 빠져서 쾌락을 탐했습니다. 청와대로 들어간 그 많은 비아그라와 프로포폴을 비롯한 약품들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겠습니까! 300명이 넘는 아이들과 국민들이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그 순간에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밝히지 못하는 저 모습을 보십시오! 저런 인간들, 문고리 삼인방이라고 하는 정호성, 안종범, 이재만과 우병우, 김기춘 등을 보십시오.
문화계 인사 만 여 명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국가의 예산지원 사업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불이익을 당해야 했습니다.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출연을 금지당하고 활동에 제약을 받는 연예인과 예술계 인사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차은택이라는 CF 감독은, 최순실과 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화계를 뒤흔들었습니다. 그의 모습이 박근혜 대통령의 옛 애인 최태민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사랑을 받아 비서실장도 대면보고를 못 하고 서면보고를 하는 마당에 매 주 1-2회, 그것도 저녁에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청와대로 들어간 비아그라가 차은택을 위한 것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박근혜 이전 대통령 이명박은 소위 말하는 사자방 비리고 유명했지요. 사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 등 세 가지 비리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비리는 비리 축에도 끼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우병우, 김기춘, 정호성, 안종범, 이재만, 최순실, 정윤회, 그리고 박근혜 정권에 협력한 일부 국회의원들 거의 전부가 바로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바로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고통 받고 수탈당하는 우리 국민들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광화문으로 달려갔습니다.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연인원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바로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기 위해 바로 앞에서 베풀었던 열 가지 재앙에 해당하는 기적입니다. 바로는 그 열 가지 재앙의 기적 앞에서 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었듯이, 대한민국의 지배계층은, 저 못된 가진 자들은 광화문에 자발적으로 모인 수 백 만 명의 군중들 앞에서 두려워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헌재도 제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탄핵을 인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무서워 해방시켰다가 곧바로 후회합니다. 그래서 자기 군사를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노예로 되잡아 오려고 군대를 보냅니다. 그 군대의 최후가 어떠했습니까? 모조리 물 속에 수장되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저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지배계층이, 가진 자들이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다시 백성들을 착취하기 위한 꼼수를 쓴다면, 바로의 군사가 수장되었듯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헌재가 대통령을 탄핵하면 살아날 것이요, 탄핵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바로가 마음을 바꾸어 군사를 보낸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과 바로 시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날은 백성들이 그 때의 노예처럼 무지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수 백 년을 노예로 살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누르면 눌리다가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면 터져서 저항하고 정당한 권리를 찾으려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모세를 이 세상 곳곳에 배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한국교회는 과거에는 이 부름에 충실했습니다. 일제 때에는 일본 침략자들에게 저항했고, 그들로부터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모세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그 무시무시한 남산의 정보부와 남영동 대공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한국 교회는 저 악독한 자들과 타협하고 오히려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축복을 외치고 그들과 달콤한 열매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전 제사장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교회 지도자들도 그런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런 잘못된 길을 비판하는 세력은 종북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매도하면서 불의에 앞장섰습니다.
그러한 잘못에 대한 심판은 외부로부터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이민족들을 통해 심판하셨듯이, 우리가 잘못하면,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불신자들을 통해 교회를 심판하십니다.
다행히도 아직 우리나라 교회는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정의를 외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가라! 모세여! 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저도 광화문 집회에 네 차례 참석했습니다.
그 열기는 정말 뜨거웠습니다. 어느 누구 강제로 나오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나온 분들, 아이를 안고, 유모차에 태우고 가족들이 함께 나온 분들,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나온 사람들, 그렇게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입에 침을 튀기며 역설하던 몇몇 저의 학교 동창들도 나왔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저는 우리나라가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가라 모세여 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화답하는 하나님의 일꾼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느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믿음을 가지고 용서를 받으며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산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아무리 말로 사랑한다고 하면 무엇 합니까? 돈도 벌어다 주고, 위로도 해주고, 함께 즐거운 일도 하고, 도움도 주면서 사랑을 느끼게 해 주어야 진정으로 사랑이 통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배려하는구나, 저 사람이 날 진정으로 사랑하는구나, 저런 희생을 할 정도로 날 아끼는구나, 이런 마음이 들 때 사랑이 통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만 믿습니다 백날 말해봐야 헛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룰 때 그 믿음이 산 믿음으로 인정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가라! 모세여! 가서 내 백성을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하라!는 그 명령을 수행하는 일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의롭게 살면 그것이 바로 그것을 수행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도자를 선출할 때 내 고향 사람이니까, 내게 조그만 이익을 줄 것 같으니까, 내가 가진 아파트 가격을 올려줄 것 같으니까, 우리 동네에 무언가 좋은 것을 해 줄 것 같으니까 그런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 바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정말 국민들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하면 될 것인지를 고민하고 깊은 생각을 하며 그런 것을 할 능력을 갖춘 자를 선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내게도 큰 이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손해날 일을 명하시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는 출애굽이 고통스러웠지만 궁극적으로는 민족이 해방을 얻고 노예에서 벗어났듯이, 하나님의 명령은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명령이지 우리를 고통 속에 빠지게 하는 명령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진정으로 정의가 살아나고, 아모스 예언자의 말씀처럼 공의가 하수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때 우리나라는 더욱 부강해지고 발전할 것입니다. 아파트 값 올려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이명박 대통령을 뽑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로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다가 초래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고, 국가경쟁력은 11위에서 29위로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가계부채가 1300조를 넘어서서 나라 경제가 뿌리째 뽑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우리나라가 금년 말이나 내년 쯤 97년 외환위기보다 더 힘든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장래를 위하기보다는 내가 치부하기 위한 정치를 한 결과 이런 결과가 초래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라! 모세여! 라는 명령에 복종할 때 우리에게 진정으로 복이 내릴 것입니다. 정말로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서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며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