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 열풍이 불면서 나타난 현상들 중의 하나가 조기유학이다.
수많은 이 땅의 어린 아이들이 오로지 영어 하나를 배우기 위해서 낯설고 물설은 이역만리 타국 땅으로 가서 공부를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기유학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점을 말할 수도 있고 그 타당성에 대해서 논의를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주로 영어교육과의 관련성 안에서 논의를 하고 기타 문제는 최소한의 관련성 안에서만 말하고자 한다.
먼저 조기유학이 영어교육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흔히들 착각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영어권 국가에 가서 잠시만 살고 오면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조기유학 경험자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듯이 조기유학이 영어교육에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영어교육에 큰 도움이 되려면 가능하면 저학년에 가는 것이 유리한데 문제는 저학년에 배운 영어는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내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영어를 쉽게 잘 배울 수 있는 만큼 또 쉽게 잊어버리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영어를 잘 배우는 만큼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말에 쉽게 동화되어서 배운 영어를 곧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어떤 분은 미국에서 자녀 둘을 키우다가 귀국을 하셨는데 귀국할 당시에 큰 아이는 중1이었고 둘째는 초등 3학년이었다. 둘 다 미국에서 자라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듯이 하면서 살았는데 둘째 아이는 귀국한 지 3개월만에 영어를 거의 쓰지 못하게 될 정도로 영어를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친구의 딸도 미국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와서 영어를 곧잘 했으나 귀국하자마자 영어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보통 한국 아이들과 똑 같은 영어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배운 영어는 아주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이전에 조기유학을 갔다오면 영어를 배운 효과가 거의 없어지고 만다.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 정도에 유학을 가서 3-4년 정도 살다가 오면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게는 될 것이다. 그러나 귀국해서 수개월 내지 반년만 지나면 영어를 거의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조기유학은 거의 낭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어렸을 적에 영어를 썼던 경험 때문에 나중에 영어를 훨씬 쉽게 배울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
둘째, 배운 영어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비교적 초등학교 고학년에 조기유학을 가면 배운 것을 잘 유지는 하겠지만 그 대신 배우는 것이 아주 어렵게 되고 만다. 사실상 초등학교 4학년이 넘어서 유학을 가면 영어를 모국어 수준에 가깝게 배우는 데 수년이 걸린다.
1-2년의 단기 유학으로는 언어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영어 공부에 아주 열정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어를 원하는 만큼 배울 수 없다. 이미 한국어가 완전히 모국어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여서 모국어 배우는 방식으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로서 배우기 때문에 영어 학습이 매우 힘들다.
그리고 초등학교도 고학년이 되면 현지 영어가 매우 어려운 수준이 된다. 말하자면 현지 초등학교 5학년이면 우리나라 5학년생이 한국어 구사하는 수준의 영어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초등학교 5학년만 되어도 이미 영어가 매우 어려운 수준이어서 공부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영어에 대한 감수성은 현격하게 줄어들고 배워야할 수준과 양은 반비례로 높아지고 늘어나서 영어학습이 대단히 어려워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5학년이 구사하는 한국어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거의 못하는 말이 없고 표현 못하는 것이 없고 이해 못하는 말이 없다. 전문적인 수준을 제외하면 말이다. 상급학년과 교육과정에서의 공부를 위한 내용이나 아주 전문적인 강의를 제외하면 못 알아듣는 말이 없다. 연속극이고 뉴스고 다 알아듣고 이해한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사람들이 일상적인 대화는 평생 미국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영어로 하고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초등학교 5학년이면 그 영어수준이 대단하다. 우리 딸내미도 미국에서 5학년을 마치고 귀국했는데 영어로 못하는 말이 없고 대화 안 되는 것이 없다. 반면에 한국어 배우는 데 귀국한 지 4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아주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러므로 영어를 제대로 배우고 배운 것을 귀국한 후에도 확실하게 유지하려면 최소한 초등학교 2학년 이전에 유학을 가서 4-5년은 공부를 한 후 적어도 초등학교 5학년은 마치고 귀국을 해야 한다.
말하자면 1학년에 유학을 갔으면 5학년을 마치고 돌아오고 2학년에 갔으면 6학년을 마치고 돌아오고 3학년에 갔으면 중학교 2학년 정도를 마치고 돌아와야 영어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이상에 유학을 가면 중학교를 마치고 와야 한다. 왜냐하면, 가는 나이가 높으면 높을수록 영어 습득이 어려워지고 따라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영어권 국가에서 유치원 정도부터 살아서 영어를 완전히 모국어 수준으로 익히고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을 마치고 돌아오면 영어를 거의 잊어버리지 않고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돌아와서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게 된다.
우리 아이가 바로 이 케이스인데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사람으로 자라고 보니 한국에 와서 한국 문화와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말을 배우는 데에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 아이의 한국사회 적응과 한국말 배우기는 현재로 봐서는 아마도 대학을 가서도 계속되어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 아이는 미국에서 상당한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 우리가 살았던 지역이 학군이 상당히 좋은 지역이어서 미국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지역에서 우리아이는 반에서 항상 1,2등을 다퉜는데 미국 전국을 망라하는 표준화 테스트에서 수학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위 1-5%안에 들었으며 영어도 상위 5-10% 안에 들 정도로 잘 했다.
성적을 토대로 판단한다면 결코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집에서는 한국말로 일상적인 대화는 할 정도로 한국말을 조금은 할 줄 알았다. 그런데도 귀국 후 한국말을 배우는데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도 우리 아이는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왔으므로 그나마 한국말을 배우고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었다. 수학은 애초에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했고 국어도 처음에는 30점 대에서 헤매다가 지금은 80점을 넘어서 90점 대에 육박하고 있다.
가장 힘든 것이 사회과목들인데 이 과목들조차 80점 대를 향하고 있다. 과학은 물론 90대를 오래 전에 돌파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 대해서 상당한 이해도 생기고 친구들도 사귀기 시작했고 한국 아이들의 습성과 태도도 이해가 생겨서 지금은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다.
좀 더 커서 귀국한 아이들은 우리아이처럼 운이 좋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중학교 과정에 들어간 이후에 귀국한 아이들은 태반이 적응하지 못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어떤 아이는 자살도 했다. 내가 공부한 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어떤 분의 자녀도 자살을 했고 또 다른 잘 아는 교수의 아들도 자살을 감행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어학습을 위한 조기유학은 자칫하면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서 아이의 일생을 망칠 위험이 있다. 일찍 보내서 일찍 돌아오면 돌아온 후 한국 사회와 한국말을 익히고 적응하는데 문제가 없는 대신 조기유학을 갔다 온 효과가 거의 없고 나이가 들어서 잠시 갔다오면 영어를 익히지도 못하고 한국사회와 격리된 기간동안 그 뒤쳐진 것을 따라잡느라 고생하고 영어를 제대로 익히도록 어린 나이에 가서 고학년에 돌아오면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서 인생이 망쳐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기유학을 가서 아예 그곳에서 대학까지 나오고 그곳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이 점을 말하기 위해서 나는 영어교육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민 이야기를 좀 해야 하겠다.
최근에 많은 한국사람들이 한국사회가 싫다고 미국과 캐나다 이민 길에 올랐다. 캐나다 이민상품이 홈쇼핑의 인기품목이 될 정도로 이민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래서 아이를 조기유학을 보내서 그 곳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후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그곳에서 눌러 사는 것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된다고 봐서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이 결단해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해서 이민을 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결정이므로 나중에 책임도 자신이 질 수 있어서 사실 괜찮다. 이민 가서 어떤 삶을 살던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이었으므로 누구를 탓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다.
그러나 자녀에 대해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아이는 아무리 부모가 책임을 지려고 해도 결국 아이 자신의 인생은 아이 자신이 살게 되기 때문에 책임을 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다. 그러므로 유학을 보내서 그곳에서 평생을 살게 만들기 전에 그러한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라고 해서 모두가 잘 사는 것은 아니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서 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몇 곱절 더 큰 노력과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거기다가 인종차별까지 고려한다면 이민은 정말 위험한 도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별것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는 미국사회에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것이 심지어 사는 지역에 따라서도 차별을 하는 존재가 아닌가! 우리나라 사람들 경상도 출신이냐 전라도 출신이냐 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차별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별나서 지역차별을 하는가? 아니다. 어느 나라나 이 지역차별 다 있다. 지역도 차별하는데 인종에 따른 차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그리고 인종차별은 계층, 학벌, 인맥에 따른 차별보다 훨씬 더 본질적으로 더 고질적이며 더 악랄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종차별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미국 백인들이 동양인을 바라보는 태도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동남아 노동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서 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백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들은 무척 오랜 세월 다른 인종과 함께 사는 것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덜 차별하는 것처럼 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종차별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더욱 가혹하고 더욱 본질적으로 할 수 있는 노하우를 키웠다는 뜻도 된다. 미국 백인들의 인종차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것보다는 덜 한 것처럼 보이지만 훨씬 더 세련되게, 그리고 더 지독하게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말 자기 자녀가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서 살기를 원한다면 그가 한국사회에서 일정부분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경험을 시키고 그 경험을 토대로 미국에 가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자녀를 위하는 길이다. 그가 어느 정도 커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이 결단을 내리고 그 결단에 대해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을 때 그의 이민생활도 오히려 더 건강하고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 보면 이민 2세들보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학위를 한 다음 미국사회에 적응하는 사람들이 취직도 더 잘되고 더 잘 자리잡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 그리고 문화적 뿌리가 있는 사람이 이런 본질적인 면에서 취약성을 가지고 오로지 언어에 약간의 이점이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적응하고 잘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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